남는 전력을 버리지 말고 ‘디지털 산업 연료’로 전환해야 할 때

전 세계가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풍력이나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는 수요와 무관하게 자연 조건에 따라 출력이 결정되는 특성 탓에, 때때로 전력이 과잉 생산되어 버려지는 ‘잉여전력(wasted electricity)’ 문제가 발생한다. 국내에서도 일부 지역에서 태양광 발전 출력 제한 조치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로 데이터센터의 유연한 전력 수요 활용이 주목받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대량의 전력을 소비하는 대표적인 산업 인프라로, 특히 인공지능(AI) 학습이나 고성능 컴퓨팅(HPC), 클라우드 서비스 등은 에너지 집약적인 작업을 필요로 한다. 반면 이들 작업 중 일부는 실시간이 아니라면 유휴 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대형 AI 모델 학습, 영상 인코딩, 과학 시뮬레이션, 백업·아카이빙 등은 연기 가능(flexible delay)한 연산이다. 즉, 전력 수급이 여유로운 시점에 집중 처리하거나, 지역별로 잉여 전력이 발생하는 곳에 설치된 데이터센터에서 수행할 수 있다면, 전력의 물리적 낭비를 줄이면서도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실제로 북유럽 국가들과 미국 일부 주(州)에서는 풍력 과잉 시간대에 데이터센터 작업을 자동 스케줄링하여 활용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도 제주도와 전라남도 같은 지역은 발전량은 많으나 수요가 적은 재생에너지 과잉 공급 문제를 겪고 있어, 이를 활용한 지역 기반 데이터센터 유치 전략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모델이 작동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정교한 전력 수급 예측 시스템과, 이를 반영한 연산 스케줄링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며, 동시에 전력 요금제 또한 실시간 가격 기반(Time-of-Use 또는 Spot Pricing)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 주민의 수용성과 친환경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대한 이해도 중요한 요소다.
재생에너지를 ‘불안정한 전력’이 아닌 ‘디지털 경제의 자원’으로 재해석해야 할 시점이다. 앞으로의 에너지 정책은 버리는 전력을 줄이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데이터센터는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전략적 산업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이 과제를 제대로 풀어낸다면,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