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자대표회장 비판 현수막, 위법 아냐”…대법 “진실하고 공익 목적이면 위법성 없다”

횡령 유죄 확정된 회장 비판은 공익 행위…명예훼손·모욕죄 성립 안 돼

아파트 관리비 횡령 의혹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입주민들이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단을 받았다. 대법원은 주요 사실이 진실에 부합하고 공익을 위한 목적이 인정된다면, 설령 표현이 거칠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기소된 A씨와 B씨에게 각각 벌금 3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두 사람은 2020년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운영비 횡령 의혹이 불거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C씨를 비판하는 현수막을 게시하고, 로비 모니터에 비난 문구를 띄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현수막에는 “유흥업소 드나들고, 접대부를 부르며 양주를 마셨다”, “법과 규약을 어기고 관리비를 펑펑 썼다”는 등의 문구가 포함돼 있었고, B씨는 모니터에 “미쳤구나 입주자대표 회장”이라는 문장도 게시했다.

1심과 2심은 해당 표현들이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미성년자도 거주하는 아파트 환경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와 달리 “사실 적시와 공익 목적이 인정되는 경우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기존 판례 원칙을 적용했다.

대법원은 “글의 주요 내용은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고, 해당 회장은 이후 횡령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다”며 “피고인들이 공익을 목적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형법 제310조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시했다.

모욕 혐의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문구가 경미한 수준의 감정적 표현으로, 명예 자체를 외부적으로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입주민들이 비리 의혹을 제기하고 공익 차원에서 의견을 표현하는 경우, 그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재판은 다시 부산지법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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