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사고 유족 패소”…제조물책임법 개정 목소리 확산

입증 책임은 소비자에…13년간 대법원 확정 승소는 단 한 건

지난 2022년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로 목숨을 잃은 12살 이도현 군의 유족이 차량 제조사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패소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소비자가 차량 결함을 입증해야 하는 현행 제조물책임법의 구조적 한계에 대한 비판과 개정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해당 사고에 대해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경찰과 검찰은 증거 부족을 이유로 운전자인 할머니에게 형사상 무혐의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민사소송에서는 차량의 결함을 인정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유족 측의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됐다.

지난 13년간 교통안전공단에 접수된 급발진 의심 사례는 790여 건에 달하지만, 하급심에서 제조사 책임이 인정된 경우는 단 4건에 불과하다. 특히 대법원에서 제조물 결함 책임을 최종 확정한 사례는 아직 한 건도 없는 실정이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현행 제조물책임법이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 소비자가 자동차의 핵심 기술 정보에 접근하거나, 고도의 공학적 분석을 통해 결함을 규명하는 데에는 구조적 한계가 따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현 군의 가족은 재연 실험과 음향 분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차량 결함을 입증하려 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 측 변호인은 “급발진 관련 민사·형사 소송 가운데 이 사건만큼 입증 시도가 다각도로 이뤄진 경우는 없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전문가들은 차량 제조사가 결함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방식으로 입증 책임의 방향을 전환하거나, 소비자의 입증 부담을 완화하는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해당 내용을 담은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산업계의 반대로 폐기된 바 있으며, 현재 22대 국회에서 논의가 재개될 예정이다.

이도현 군의 아버지는 “법은 기업 편에 서 있다”며 “국민을 지키기 위한 법은 왜 존재하지 않는지, 또 무엇이 더 희생되어야 이 법이 바뀌는지 묻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민사 판결을 넘어, 기술 복잡도가 높은 산업 제품에 대해 소비자가 과도한 책임을 지고 있는 현행 법제의 개선 필요성을 강하게 환기시키고 있다.